전기자동차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의 CEO, 엘론 머스크(Elon Musk) 소개

엘론 머스크(Elon Musk)을 소개 하자면 2015년 현재 몇 가지의 전기가 나와 있다. 거기서 보면 엘론 머스(Elon Musk)를 스페이스 엑스(Space X)을 창업하여 우주 로켓 발사를 민영화 하여, 발사 비용을 획기적으로 줄이면서 새로운 우주 시대를 여는 인물로서 자주 묘사된다. 그리고 아이언맨(Iron Man)의 주인공 토니 스타크의 실제 벤치 마킹 인물이기도 합니다. 여기서는 엘론 머스크의 다른 사업 분야는 접어두고 일단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의 전기 자동차가 가져 올 미래 자동차 산업에 미칠 영향에 대하여 설펴 보도록 하겠습니다.


엘론 머스크(Elon Musk)


엘론 머스크(Elon Musk)의 성장과 기업가로서의 이력

1971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태어난 엘론 머스크는 캐나다를 거쳐 10대 후반 미국으로 건너와 펜실베니아 대학교에서 경영학과 물리학을 공부한다. 스탠퍼드대 박사과정을 이틀 만에 자퇴한 그는 인터넷 결제시스템 업체 페이팔(Paypal)을 창업한 뒤 이를 이베이에 매각해 최초 투자 자금을 마련합니다. 회사 매각 자금으로 전기차 업체 테슬라(Tesla)와 우주로켓기업 스페이스X(SpaceX)를 연이어 설립한 그는 2004년에는 태양광발전기업 솔라시티(Solar City)에도 투자하였습니다. 이상 간략하게 엘론 머스크(Elon Musk)의 이력을 간단하게 설펴 보았습니다. 엘론 머스크는 대학 시절 지구 온난화와 석유 자원 고갈 등에 환경 문제에 지대한 관심을 가져 그의 모든 사업이 친환경적 미래 사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자동차 산업의 특징

일반적으로 자동차 산업은 IT 산업 대비 그 유구한 역사와 규모의 경제로 인하여 아무나 쉽게 접근하기 못하는 산업이다. 실제 자동차 산업은 1900년 이후 미국의 경우 초기의 수많은 자동차 업체가 사라져 최근까지 Big3만 존재하였고, 그나마 크라이슬러도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피아트에 매각되었다. 그래서 세계에서 가장 큰 자동차 시장인 미국에 단 2개의 완성차 업체인 GM가 FORD가 존재한다. 그만큼 자동차 산업은 진입 장벽이 높고, 여타 산업의 진입이 거의 불가능한 업종입니다. 자동차는 개발 기간도 최소 3년 이상이 걸리고, 많은 협력업체와 협업으로 자동차를 개발해야 합니다.


자동차 산업의 흐름

자동차 산업의 초기에 잠시 전기 자동차가 선보였으나, 배터리의 안전과 성능 문제로 사려졌다. 그리고 가장 문제는 당시 정유 산업이 활성화 되면서 값싼 자동차용 연료가 대량 보급 되기 시작하여 자동차 연료로 사용되었다. 자동차 산업은 전기자동차→가솔린자동차→디젤자동차→하이브리드 자동차→전기자동차→무인자동차라는 시대적인 흐름을 타고 왔다. 가솔린 자동차 시대는 1970년 중동 전쟁의 여파로 인한 오일 쇼크로 주춤하였으나 이후 값싼 석유 시대의 도래로 인하여 아직까지는 건재합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구 온난화 문제, 석유 자원의 고갈 문제, 배기가스로 인한 공기오염으로 인하여 최근 전기 자동차가 다시 부활하였습니다.


전기 자동차의 역사와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가 가져온 충격

GM이 1996~1999년까지 소비자들에게 임대한 EV1은 당시로는 혁신적인 기술과 상품성과 대중적인 인구에도 불구하고 GM이 전량 폐기 처분하여 미국 환경 단체의 거센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만일 EV1이 계속 시장에서 성공했다면, 미국 자동차 시장은 지금과는 완전 다른 양상이 될 뻔 하였다. 이런 환경적인 흐름을 타고 엘론 머스크는 페이팔의 매각 자금으로 2004년 테슬라 모터스(Tesla Motors)에 투자하여 전기 자동차 사업을 시작하여 전혀 새로운 전기 자동차 회사가 생겨났다. 


테슬라 모터의 전기 자동차 개발

당시에 계획은 2007년 가을에 신제품인 테슬라 로드스터(Tesla Roadster)를 출시 할 예정 이였으나, 짧은 개발 기간과 경험 부족으로 제때에 출시하지 못하였다. 결국 2008년 2월에 겨우 한대만 출시 할 수 있었다. 그리고 자금난을 겨우 극복하고, 2009년 4월 320대를 출시하여 큰 성공을 거둔다. 로드스터는 리튬이온 셀을 6,831개나 탑재한 배터리팩과 파워트레인을 갖고 있어 차량 무게는 1,235kg으로 다소 무거운 편이지만 최고 시속이 201킬로미터에 이르며 가속 성능 3.7초라는 놀라운 성능을 발휘한다. 1회 충전으로 394km라는 충분한 주행거리를 확보하였다. 로터스와의 공동 개발로 로드스터의 주행 성능 아주 뛰어났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배터리를 자체적으로 개발한 점이다. 일반 리튬이온 전지를 연결하여 무게 450kg에 달하는 배터리를 연결하여 안정적이고 강력한 자동차용 배터리를 만드는데 성공하였다. 이후 외부의 투자 유치로 인해 전기 자동차 개발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테슬라(Tesla) 로드스터(Roadster)


완전 자체 개발 전기 자동차 모델 S 전기 자동차의 성공

테슬라(Tesla) 전기 자동차 모델 S는 차체 경량화와 공력 성능의 개선 외에도 아주 주목할 만한 기술적인 진보를 보여 주었다. 바로 17인치 터치 스크린 판넬이다. 터치스크린으로 조향장치 설정과 서스펜션 선택은 기본이고 브레이크 강약에서 에어컨 조절까지 모든 기능을 작동시킬 수 있다. 자동차와 마치 아이패드가 결합된 듯한 모습이다. 기존의 자동차가 모두 버튼 스위치로 작동 된다면 모델 S 전기 자동차는 터치 스크린 하나 뿐이다. 게다가 30분 급속 충전 320km 주행이 가능하다. 2010년 6월 테슬라(Tesla)를 나스닥에 상장하여 2013년 기준 80억 달러 주식 가치를 지니는 기업으로 성장하였다. 이는 기존 GM 주식 가치의 절반에 이른다고 한다. 모델 S의 성공으로 전기 자동차 개발의 기술 노하우를 축적한 테슬라(Tesla)는 전기 자동차인 모델 S의 완성차만 판매 하는 것이 아니고 배터리나 인버터, 전기 모터 등 전기자동차의 중추동력 장치에 해당하는 파워트레인을 다른 자동차 메이커에 판매하는 사업도 병행한다. 바로 이점을 주목해야 한다. 기존 자동차 업체도 전기 자동차를 개발하고 협력 업체를 통해 부품을 공급 받고 있지만, 테슬라(Tesla)는 후발 주자임에도 불구하고 독자 개발한 전기 자동차 부품을 오히려 기존 완성 자동체 업체에 팔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완전히 기술적인 역전의 상황이 발생하였다. 


테슬라(Tesla)의 2번째 모델 S



테슬라의 내부 터치 스크린 계기판


시장 출시 직전의 모델 X(크로스오버 SUV)

모델 X는 크로스오버 SUV이다. SUV이지만 주행 성능은 포르쉐를 압도한다. 2016년에 일반 판매가 가능할 걸로 생각된다. 모델 X는 탑승 인원이 최대 7인승으로 전기 자동차임에도 충분한 인원의 탑승과 짐을 실을 수 있다.

고성능 모델과 일반 모델 등 두 종류로 출시되는 '모델 X'의 주요 스펙은 아래와 같다.

P90D (Performance All-Wheel Drive)

1회 충전 주행거리 : 250마일(약 402킬로미터)

0-60 mph(약 96 km/h) : 3.8초/ 3.2초 (Ludicrous Speed Upgrade)

전륜 259마력, 후륜 503마력 모터

최고속도 : 155mph(약 249km/h)


90D (All-Wheel Drive)

1회 충전 주행거리 : 257마일(약 413킬로미터)

0-60 mph(약 96 km/h) : 4.8초

전/후륜 259마력 모터

최고속도 : 155mph(약 249km/h)


테슬라(Tesla) 전기 자동차 모델 X


SUV 전기 자동차 모델 X 이후의 개발 차량과 궁극적인 목표

모델 X 이후의 모델은 모델 S의 축소 전기자동차라고 한다. 그럼 궁극적으로 엘론 머스크가 지향하는 바는 무엇일까? 형태로 봐서는 2인승 쿠페(로드스터)→4도어 세단(모델S)→SUV(모델X)로 점점 더 대중 자동차 시장을 파고 들고 있습니다. 좀더 멀리 보면 필자의 생각으로는 대로 대중화된 무인 전기 자동차이다. 최근의 언론 보도를 보면 머스크는 반자동 전기자동차를 출시 할 예정이다. 기존 전기 자동차에 반자동차 무인 자동차 시스템을 얻는 것이다. 1900년대에 자동차의 대량생산과 값싼 자동차의 대량 보급으로 엄청난 성공을 했던 포드와 GM의 사례를 보면 결국에 머스크는 가격을 절대적으로 낮추어 대중화된 전기 자동차 시장을 파고 들 것이다. 그 싸움에 구글과 애플의 무인 자동차 개발이 있고, 이것은 결코 자동차를 IT로 볼 건지, 아니면 기존 내연 기관 계통의 산업으로 정의 하는 것에 따라 많은 변화와 소용돌이를 일으킬 수 있다. 만일 전기 자동차에 테슬라 모터가 주도하는 날이 온다면 기존 자동차 완성차에게는 엄청난 시련이 닥칠 수 있다. 혹은 구글이나 애플이 자기들 OS에 자동차 제어 시스템을 통합하여 전기 무인 자동차을 완성한다면 어떻게 될까? 기존 완성차 업체는 내연기관 관련 된 많은 기술적 노하우와 기술적 장애의 장점을 한 순간에 잃어 벌릴 수가 있다.


 결국 가까운 시기에 자동차 산업의 재편은 불가피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지요?



1. 윌리엄 듀런트 (William C. Durant, 애칭 Billy)

오늘날 세계 자동차 산업의 초석을 세운 사람을 말하라 하면 아마도 주저 없이 윌리엄 듀런트를 뽑을 수 있다. 그는 오늘날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이자, 미국 자동차 산업의 대표격인 GM을 만든 인물이다.

세계 최대 자동차업체가 되기 위한 토대를 마련하는 측면에서 듀런트는 정상적인 선택은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플린트 시의 마차 제조업체를 가장 성공적으로 이끌었지만 고등학교를 중퇴했었고, 시민 대표(Civic Leader)가 그에게 쓰러져 가는 Buick을 인수해 지켜달라고 요구할 때까지 자동차를 사용하지 않고 마차만을 사용했던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의 딸마저 자동차에 탑승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는 단지 쓰러져 가는 Buick을 구한 것만이 아니다. 그는 첫 자동차업체의 토대를 세웠다.

Ford는 한 개의 차량에 한 개의 브랜드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던 반면, 듀런트는 브랜드 집단을 꿈꿨으며,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자동차의 유형을 달리하여 생산했다. 이는 마차 제조산업에 필연 적인 혁명이었으며. 실용적인 농업용 4륜 마차에서 고급스러운 대형마차까지 다양한 모델을 생산하고 있었다.


그는 1908 Buick의 모회사로 GM을 설립했으며, Oldsmobile Cadillac을 비롯한 기타 많은 신생 자동차업체를 인수했다. 그러나 듀런트는 많은 자동차업체를 인수하여 회사 재정상의 문제를 불러왔다. 대부분 부실기업을 인수하는 방식으로 진행된 이런 인수합병의 결과는 성공과 실패가 공존했다. 그는 1911 GM에서 강제 퇴출 당한 뒤 Gaston Louis Chevrolet와 새로운 자동차 제조업체 창립을 위해 협력했다. 그는 궁극적으로 Chevrolet 자회사를 창업한 뒤 와신상담 끝에 1916 GM을 재 지배할 만한 충분한 GM 주식을 확보하여 GM의 최대주주로 부활했다. 그러나 듀런트는 4년 후 다시 모든 것을 잃게 된다. 자동차회사를 창업하겠다는 그의 3번째 시도도 실패로 끝났으며, 듀런트는 플린트 (Flint)시에 볼링장을 운영하다가 생을 마감했다.

그는 회사 경영자로서 보다는 기업의 인수 & 합병의 귀재였다.

 

3. 헨리 포드(Henry Ford), 자동차로 진정한 현대시대를 연 경영인, 미국

 

1. 성장 과정

헨리 포드(1863~1947)는 평범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청소년기부터 기계공을 거쳐서 나중에 에디슨 조명 전기 회사에 취직하여 밤에는 자동차 만드는 일에 몰두하여 자작 자동차를 만들기도 하였다. 회사를 독자의 회사를 설립하였지만 실패하여, 자동차 경주에 출전하여 우승하기도 하였다. 또 다른 회사인 포드 자동차를 설립하여 포드 자동차를 시리즈를 만들어 판매에 성공하였으나, 1908년 모델 T를 계기로 자동차의 역사를 바꾸는 인물이 된다.

2. 헨리 포드의 공과

헨리 포드는 비록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많이 배우지는 못 했지만, 꾸준히 기계공의 길을 걸어서 자동차 회사를 계기로 경영인의 반열에 들게 된다. 헨리 포드는 당시로는 자동차 당연한 사치품이었으나 누구나 탈 수 있는 적당한 품질의 적당한 가격의 자동차 모델 T를 대량생산하여 미국인들에게 자동차를 보급하였으며, 또한 당시 하루 일당 2.5 달러를 하루 5달러로 올려 노동자들의 임금을 올려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는 구매력을 만들었다. 하지만 이것은 원래 헨리 포드가 자선 사업가여서 그랬던 것이 아니었다. 당시 자동차를 대량 생산하면서 생산 공정은 대단히 단순하고 지겹고 힘든 일이 되었다. 그래서 이런 노동 강도를 노동자들은 견디지 못했으며, 그리하여 이직율이 대단이 높았다. 이런 이직율을 낮추고자 하는 방법의 하나가 당시로는 고임금인 9시간 노동에 5달러를 지급하였던 것이다. 아마도 혹자는 최고의 원가 절감법이었다고 평가한다. 아무튼 이런 대량생산, 소득의 증가로 인하여 누구나 가질 수 있는 비젼이 실현되었고, 이것은 곧 현대 대중 문화의 출현이었다.

 헨리 포드는 경영자로서는 성공하였으나, 그의 사상은 대단히 보수적이다 못해 수구적인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헨리 포드는 당시에 노동자를 감시, 협박, 회유하는 조직을 공장내에 운영하여 노조 설립을 막았다. 하지만 이것도 회사 입구에서의 구사대의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폭력으로 마지못해 노조를 인정하였다. 또한 헨리 포드는 아직도 뜨거운 이슈인 반유대인 사상을 지니고 있었다. 그는 세계 대전이 유대인으로 인해 발생했다고 믿었으면, 이런 반유대 활동으로 인한 나치 독일로부터 훈장을 받기도 하였다.

3. 모델 T성공과 시대에 뒤 떨어진 자동차 경영

헨리 포드는 모델 T 성공으로 그는 당시 미국에서 가장 돈이 많이 벌어 억만장자의 대열에 합류하였으나, 모델 T의 성공에 도취하여 소비자들의 욕구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였다. 당시에 값싼 가격의 자동차를 대중에게 보급하여 자동차의 대중화 시대를 열었으나, 모델 T를 고수하여 자동차 제조방식이나 회사 경영에서도 후퇴를 경험하게 된다. 그리하여 마침내 GM에 추월 당하고 1930년대에는 Chrysler에도 추월 당하게 된다. 당시 대중은 각 계층, 남녀, 인종별로 다양한 차종을 원했으나 오직 모델 T는 약간의 모양과 부품을 변경하여 유지하게 된다. GM이 다양한 계층에 모든 종류를 자동차를 공급하는 멀티 브랜드 전략을 유지하여 포드를 추월하게 된다. 이 후 포드는 Chrysler 기술 우위 전략에 밀려 한 때 시장 점유율 3위로 추락하기도 하였다. 만일 그 때 포드가 멀티 브랜드 전략과 기술 우위 전략을 내 세웠다면 1등을 내 주었을까 하는 의문도 든다.


2. 알프레드 슬론 주니어, GM의 발전의 주역,미국 자동차 산업의 전설

알프레드 슬론 주니어 (Alfred P. Sloan Jr)

슬론은 여전히 근대기업의 아버지로 일컬어지고 있는 조직사회의 천재로, 그는 모든 점에서 듀런트와 정반대였다. 그는 몽상가 기질이 다분했던 듀런트와 달리 현실에 바탕을 둔 관리자였다. 아마도 오늘날 현대기업 경영과 자동차 산업의 현대화에 가장 큰 공로자로 뽑자면 알프레드 슬론 주니어다. 필자가 생각하기로는 오히려 헨리 포드보다 현대와 자동차 산업에 미친 영향력이 훨씬 크다.

 

1875년 태어난 알프레드 슬론은 MIT에서 전기공학을 전공했으며, 1899년 당시 포드자동차에 베어링을 납품하던 하얏트 롤러 베어링이라는 회사의 사장이 됐다. 이 회사가 결국 GM에 흡수되면서, 그는 GM의 일원이 됐다. 그는 GM 부사장을 거쳐 1923 GM 사장 겸 최고경영자(CEO)가 됐고, 1937년에는 회장까지 올랐다. 슬론은 1923년부터 1946년까지 23년간이나 GM 최고경영자로 활동했다. 1956년까지 GM 회장으로 재직하면서 30년 이상 GM의 경영을 총괄했다.

 

그는 시보레, 폰티악, 올스모빌, 뷰익, 캐딜락 등 각각의 브랜드를 통해 서민층부터 부자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소비계층에 가장 적절한 브랜드 전략을 확립했다. 슬론의 이런 전략은 GM 1930년대부터 포드를 누르고 업계를 선도해나갈 수 있도록 해줬다. 슬론은 제 2차 세계대전을 통해 GM을 다른 시각으로 봤으며, 모든 소비자 기호에 맞춘 자동차에 대한 듀런트의 비전을 재정의했다.

 

슬론의 조직구조는 중앙에서 통제는 하되 운영은 각 조직에서 하는 (Decentralized Operations with Centralized Control) 슬론의 조직구조는 현대기업의 모델이 되었다. 비록 마음 내키지는 않지만 냉혹한 파업 후 전미 자동차 노동조합 (United Auto Workers, UAW)을 정식으로 인정하여 80년 동안 좋은 방향이든 나쁜 방향이든 디트로이트를 명백히 보여준 노동구조를 구축했다.

그는 이 자동차를 통해 년간 모델 변화와 같은 혁신으로 소비자들을 유혹하였으며, 결국 세계 최고의 자동차 회사가 될 수가 있었다. 이는 자동차를 교통수단으로 보는 Ford의 비전과는 정반대이다.

슬론은 소위《Streetcar Conspiracy》의 입안자이기도 했다. GM은 석유회사들의 비밀 협의체와 함께 미국 도시에 경철도 (Light Rail System)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이를 버스라인으로 대체했다. 역사가들은 미국에 효과 적인 대중교통 수단이 부족한 것은 이것 때문이라고 비판하기도 한다.

 

아무튼 이런 슬론 이후의 GM 50~60년대의 황금기를 걸쳐, 70년대부터 쇠퇴의 길을 걷게 되어 마침내 파산에 이르게 된다. 만일 슬론과 같은 경영자 있었더라면 GM이 파산하였을지는 의문이다.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