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 포드 몬데오, Mondeo [자동차 모델]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2015.05.27 09:48 Posted by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39. 포드 몬데오, Mondeo [1993~2015, 자동차 모델]

1993년 출시 이후 2015년까지 25년간 450만대가 팔린 4세대 모델까지 있는 장수 모델이다.

지난 2015년 3월에 도입한 All new Mondeo는 2.0l 터보 디젤 엔진 엔진과 6단 듀얼클러치를 채택했다. 최고출력은 180마력, 최대 토크는 40.8kgm이다. 해외에서는 1.5l 모델과 2.0l 가솔린 터보 모델도 있지만 국내는 디젤 모델만을 도입하였다.

 연비 효율성에서는 단연 앞선다. 복합연비는 15.9km/l로 동급 최고 수준이다. 유럽차에 주로 장착된 스타트 스톱 기능도 탑재 되었다. 차가 정지 되었을 때 시동을 끄고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면 재시동을 걸면서 연료 소모를 최소화한 것이다. 2015년부터 국내에 적용되는 유로6 기준을 만족해 친환경서도 인정받았다. 

 


 실내는 포드의 싱크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 갖춰져 있어 간단한 음성 명령만으로 헨즈프리 통화와 음악 감상 등 다양한 기능을 활용할 수 있다. 스마트폰, MP3 플레이어, 아이팟 등을 싱크와 연결해 저장된 연락처를 내려받고 음악도 재생할 수 있다. 운전대의 버튼을 누르고 이름을 부르면 그 사람에게 전화가 걸린다.

 안전장비로는 충돌 경보 시스템, 차선 이탈 경보 시스템과 함께 뒷좌석 팽창형 안전벨트 에어백을 갖췄다. 차량이 차선을 벗어나려는 것을 감지하면 스티어링 휠에 진동을 발생시켜 중앙으로 바로 잡을 수 있도록 한다든지 주행상황에 따라 불빛을 조절하는 어댑티브 LED 헤드램프 등은 다른 차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하지만 ‘뒷좌석 팽창형 안전벨트 에어백’은 완전히 새롭다. 그도 그럴 것이 이는 포드가 안전벨트와 에어백을 결합해 세계 최초로 개발한 에어백 기술이기 때문. 전면 혹은 측면에 충돌이 감지되면, 특수하게 고안된 버클을 통해 압출가스가 배출되면서 안전벨트가 눈 깜짝할 사이에 부풀어 오른다. 팽창된 안전벨트는 충돌에 의한 충격을 흡수하고 그 영향을 최소화함으로써 탑승자를 보호하고 목, 가슴, 머리 부상의 위험을 줄여준다. 일반적인 안전벨트와 비교했을 때에도 탑승자의 상체에 가해지는 압력을 분산시켜 더욱 안전하다. 팽창형 안전벨트는 몇 초 동안 부풀어있는 상태를 유지하고 그 후에는 다시 원상태로 돌아간다. 대부분의 어린이 보호용 안전 좌석과도 함께 사용할 수 있어 부상 위험이 큰 어린이는 물론 노약자들의 안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는 게 포드의 설명이다. 일반적인 안전벨트보다 좀 더 두툼한 느낌은 들지만 착용했을 때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특히 몬데오 외관은 세련미와 역동성에 초점을 맞춰져있다. 정지상태에서도 차가 달리는 듯한 역동적인 모습을 표현한 포드 유럽 디자인 DNA인 키네틱(Kinetic)이 그 중심에 있다. 앞모습은 강인하면서 매끄럽다. 육각형 그릴과 날카롭게 각을 세운 헤드램프, 볼륨감을 살린 보닛 등은 강렬한 이미지를 제공한다. 루프 라인이 낮고 간결하게 획을 그은 숄더 라인은 스포티한 이미지다. 인테리어는 투박한 미국 스타일에서 벗어나 유러피안 감성이 곳곳에 숨쉰다. 스티어링 휠과 기어 레버를 시트에 쓰인 가죽과 동일한 소재로 감싸 운전자 손끝이 닿는 곳은 모두 부드럽게 마무리했다. 

몬데오는 국내에 두가지 트림(트렌드•티타늄)이 도입됐는데 가격은 각각 3990만원과 4330만원부터다. 경쟁상대인 폭스바겐 파사트 등을 고려해 경쟁력있는 가격선이 책정되었다.

* 참조 : 매일경제



38. CISITALIA BERLINETTA , 1946 [자동차 디자인을 마침내 예술로 인정받은 차]

1951년 뉴육 현대미술관이 Cisitalia Berlinetta를 전시하기로 했을 때, 자동차 디자이너는 마침내 그들이 예술가로서 인정 받았다고 생각하였다. 조각가와 산업 디자이너는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데 바빴는데, 그렀지만 자동차 디자이너는 크롬, 핀 그리고 연간 모델 변경을 통하여 속임수를 쓰다고 나쁜 평가를 받곤 하였다. 그러나 미학적으로 균형잡힌 Cisitalia는 자동차의 외관도 진짜 예술 조각이 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그런, 문화적이고 미학적인 둘은 좀더 깊은 연관이 있었는데, 그것은 Cisitalia의 명성 아래 묻혀졌다. 이태리 북부에 최전선이 됨에 따라 처음에는 피아트 공장이 1945년에는 조용했는데, 사업가이자 경주용 드라이버인 피에로 듀시오(Piero Dusio, 1899~1975)가 Cisitalia를 인수하여 자동차 산업 르네상스를 이끌었다.

다른 미학적인 관점에서, 이 자동차는 1930년대에 일반적으로 각각 다양하게 분리되어 작업하던 오래된 스타일 자동 차체 업무를 통합하여 새로운 흐름 만들어 냈다. 평상시에는, 밀란(Milan)의 투어링 코치 회사(Touring coachwork company)는 멋지고 유연한 차체의 알파 로메어 8C(Alfa Romeo 8C)를 생산하였다. 이것은 1938년에 르망(Le Mans) 엔트리에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어떤 각에서는 대단히 아름다웠으나 옆면에서 봤을 때 ‘어깨’부분엣 대단히 크고도 무거워 보였다.

 Cisitalia를 위해서, 바티스타 ‘핀인’ 파리나(Battista ‘Pinin’ Farina, 1893~1966)는 동일한 미적 방향을 추구했으나 너무 딱딱한 느낌으로 만들었다. 곡선은 에어로다이나믹에 완벽하게 호소했으나 바퀴 아치와 윙(펜더)는 쉬고 있는 표범의 앞발과 뒷 다리를 연상시키고, 파워와 운전 성능에 호소하는 강렬한 동물적인 특성을 지녔다. 이런 형태는 이태리 ‘스포팅 라인’이라 불리는 페라리와 다른 위대한 이태리 자동차의 특징이 되었으며, 심지어 영국의 스포츠 카인 재큐어(Jaguar)까지 영향을 미쳤다.

CISITALIA BERLINETTA

전쟁은 끝나고, 미래는 여기서 시작되었다. Cisitalia Berlinetta의 완벽한 자세는 왜 Pininfarina가 회사 디자인 개발에서 명백한 흔적을 남겼다고 평가한다.




37. ALFASUD, 1971 [자동차 모델]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2014.09.14 20:35 Posted by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37. ALFASUD, 1971 [자동차 모델]

루돌프 허루스카(Rudolf Hruska, 1915~1995)는 2차 대전 후 이태리에서 가장 능력 있는 유능한 ‘자동차 맨’이었다. 루돌프는 오스트리아에서 출생하여 1938년 설계 엔지니어로 페르니난도 포르쉐(Ferdinand Porsche) 회사에 입사하여서 새로운 폭스바겐의 설계와 생산 계획을 세우는데 일조하였다.  전쟁 말기에, 그는 이태리에서 추방되어 포르쉐 디자인 트랙터 회사인 Offincine Meccnaiche(OM)에서 일하였고 Tazio Nuvolari와 같은 자동차 경주를 통해서 Cisitalia를 알게 되었고, 이것은 그가 이태리 자동차 산업에 관계되는 계기가 되었다. 1951년까지 그는 알파 로메오(Alfa Romeo)에서 자문을 했다.

이태리에서의 경력으로 그는 알프스 근처의 Pomigliano d’Arco에서 공장에서 자동차를 생산하는 것 뿐 만 아니라 새롭고 인기 있는 알파 로메오를 개발하는 일을 맡았다. 이 프로젝트는 약간의 이태리 정부가 남부 이태리의 고용을 촉진할 의도를 가지고 했지만, 알파 로메오 회사는 밀란에서 가능한 최소한의 인력을 고용 할 의도를 가지고 있다.

 알파수드(Alfasud)는 허루스카(Hruska)는 폭스바겐사에서의 경험을 살려 플랫-4 ‘박스’ 엔진을 사용하였다. 그는 차체를 디자인하기 위해서 조르지아 주지아로(Giorgetto Giugiaro, 1938~)을 영입하였고, 이것을 주지아로는 그의 최초의 양산 모델을 성공시켰고. 이것을 바탕으로 현재 투린의 Moncalier에 이탈디자인(Italdesign)을 설립하였다. 알파수드는 자동차 자체로서는 아주 훌륭했지만, 북부 지방의 나라에서는 부식 문제가 발생하였다. 이런 문제로 자동차 판매는 부진하여 판매 목표량의 50%만 달성하였다. 영국과 다른 나라에서도 현지 고용을 증대하기 위하여 이설된 공장의 자동차 생산은 거짓으로 들어났다. 

 아름답고, 실용적인 운전하는 즐거움이 있었으나 Sud는 차체 부식 문제로 차량에 대한 인기가 식어 버렸다. 이것을 디지인한 조르지아 주지아로는 주요한 독립 디자인너로 발돋움하게 되었다.

36. PIAGGIO APE , 1948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2014.09.09 16:54 Posted by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36. PIAGGIO APE , 1948

조그만한 Vespa을 바탕으로 만든 트럭은 이태리의 어떤 길에도 흔히 볼 수 가 있었는데 얼마나 준비가 철저해서 혁신적인 차가 될 수가 있었다. 이 조그만한 트럭은 평범한 농부나 자영업자에게 딱 맞았는데 APE는 오래된 유럽의 도시의 좁은 골목을 누비기에 딱 적당한 크기였다. 이것은 가격이 싸고 구매에도 부담이 없고, 당시로 봐서는 연비가 아주 좋았다. 오늘날의 밴 운전자는 아마도 Ape를 몰고 배달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럼에도 Ape는 오늘날의 밴처럼 크고 빠르고 화물을 많이 싣 을 수 있었다. 소형 엔진의 Ape는 자신의 임무를 충실히 이행하였다. 

 2차 세계 대전이 끝나고, 이태리는 새로운 ‘작은 자동차’ 해결책의 최적지가 되었다. 그리고 Piaggio는 비행기 개발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항공 엔지니어이자 핼리콥터의 선구자인 코라디노 (Corradino D’Asanio, 1891~1981)은 새롭고 합리적이고 통합된 2 바퀴를 제안하였는데, 이 차의 부저 소리와 뽀족한 꼬리 때문에 Vespa로 불렀다.(이태리어로~~)

D’Ascanio는 프레스 스틸 프레임과 조정뿐 만 아니라 엔진과 운전석 공간을 잘 배치하여 Ape(벌)로 불리는 가볍고 조그만 트럭에 이런 기능 적절히 재배치 하였다. 이런 개념의 경제성과 유용성은 한 세대에 걸쳐 수업업자와 상공인들에게 인기를 끌었고, Piaggio는 인도, 중국, 베트남의 공장에서 이러한 경트럭을 많이 생산하였다.

 

좁은 도로에서 경제성과 적합성을 갖쳤다. Ape의 훌륭한 품질로 이태리의 소상공인과 농부에게 인기를 끌었고, 이것 역시 아시아 국가에서도 큰 인기를 끌었다.

  

1940년대 포스터


35. GN CYCLECAR, 1910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2014.09.05 10:03 Posted by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35. GN CYCLECAR, 1910

두 명의 젊은이가 자신의 이름으로 꿈을 이루었다. 그들은 부모의 차고에서 자동차를 설계하였다.. 이것은 대단히 인기 있는 제품이자 떠오르는 자동차 사업이었다. 이 자동차는 아주 단순해서 오늘날에 불가능하게 보일 정도다. 그러나 1911년에 아취발드 프레이져 나쉬(Archibald Frazer-Nash, 1889~1965)와 로날드 가드프레이(Ronald Godfrey, 1887~1968)가 런던의 핀스버리 기술학교(Finsbury Technical College)를 엔지니어로 졸업하고, Godfrey & Nash(GN)라는 그들의 회사를 설립하였다. 그들이 만든 자동차는 자동차라기 보다는 오토바이에 가까운 2 실린더 공냉식 자동차로 ‘cyclecar’로 알려졌다. 1920년까지 아취(Archie)는 동일한 구조에 바탕을 둔 프레이져 나쉬(Frazer Nash) 자동차를 상당히 만들었다.

 자동차 설계의 한 가지 특징은 기어박스 대신에 변속을 위해서 서로 다른 크기의 체인과 스프로켓을 사용하였다. 이 자동차는 운전자 시트 밑 뒤 액슬의 중간 샤프트 사이에서 구동되었는데, 만약에 운전자가 도그 클러치(dog clutch)를 이용하여서 기어를 바꾸면 체인이 다른 체인으로 변경되었다. 이것은 빠르고 효과적인 변속 방법이었다. 더구나 이 자동차는 디프렌셜 기어가 없어서 뒤 액슬은 하나의 부품이어서 GN 운전자들은 코너를 돌 때 많은 스로틀(가속 밸브)밸브를 사용하였다.

GN과 Frazer Nash 자동차는 이 시기에 영국의 스포츠 자동차에 딱 맞았는데, 외관은 가늘고 투박한 외관에다가 가볍움과 단순함으로 성능을 배가 시켰다. 슈퍼 스포츠 운전자들은 한번 연료를 주입하면 작은 자동차 경주장에서 메탈 특유의 냄새가 퍼지는 Basil Davenport의 GN Spider 같은 자동차로 MG와 Austin을 종종 이기곤하는 언덕 경기에 강한 ‘전문 자동차’로 변신하였다. GN과 Nashes는 Vintage Sports Car Club인 특별한 영국 협회의 근간이 되는 대단히 도전적인 자가 정비사 세대를 만들어냈다.

  

1922년 200마일 경주를 위한 브룩크랜드(Brooklands)에 GN팀이 있다. 아취 프레이져 나쉬(Archie Frazer Nash)가 가디건을 입고 중간 위치의 자동차에 있다. 그의 복장 특징은 헬맷을 착용하였다.


집에서 개조된 GN의 다양한 변형품은 Basil Davenport’s sprint와 언덕에 특화된 Spider 같은 차량이 있었는데, 대단한 속도를 내었다. 사진은 1920년 Skegness, Lincolnshire의 모래 지면에서 원형 Spider의 Davenport이다.






34. 시트로엥 AMI(CITROEN AMI), 1961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2014.08.29 16:15 Posted by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34. 시트로엥 AMI(CITROEN AMI), 1961

1950년대 말에 시트로엥은 ‘우주 시대의 DS’와 아주 구식의 2CV 사이의 갭을 메울 필요가 있었다. 이 해결책은 미학적으로 아름다운 혁명적인 DS와 연관을 가지면서 엔진과 기계적인 레이 아웃은 2CV에 기초한 새로운 자동차였다. 의도는 좋았지만 사실은 AMI는 가장 못 생긴 자동차로 불렸다.

 이런 이상한 외양은 아주 서로 다른 형태의 자동차를 새로이 개발하는 것에서 비롯되었다. DS는 넓고 낮고 그리고 게 모양의 풍부한 형태의 자동차였다. 그러나 AMI는 창백하고, 높고, 좁고 그리고 실용적이다. 그러나 특히 그로테스크한 요소가 첨가된 뒤 경사면의 윈도우는 그 시대의 미국 스타일 단순히 모방한 것이 아니라 중간 크기의 자동차에 필요한 캐빈(승객이 차지하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AMI는 비록 다른 곳에는 별로 주목을 못 받았지만 1966년에 성공하여 프랑스에서 베스트 셀링 자동차가 되었다. 흥미로운 것은 한번도 시트로엥 뱃지를 달지 않았는데, 그것은 아마도 다른 회사가 AMI를 만들지 않았고, 한 사람을 위한 앞쪽 좌측에 한 사람을 위한 면과 트림이 이상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이후에 AMI는 후속의 GS 모델을 위하여 설계된 플랫 4 실린더 엔진을 장착했는데, 이것은 매끈한 달걀 모양으로 거의 90 mph 속도를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시트로엥 AMI 미학적인 의미에 축복이었다. 그것은 프랑스의 미학이 아주 특출하여 한 나라에서 다른 나라로 아주 급격하게 변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다. AMI는 디자인에 있어 국가적인 정체성인 고급적 취향을 추구한 시절의 향수를 일으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AMI는 자동차 디자인에 있어 프랑스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영원한 실체로서 존중 되어야만 한다.




33. 재규어 E-TYPE(JAGUAR E-TYPE), 1961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2014.08.28 11:10 Posted by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33. 재규어 E-TYPE(JAGUAR E-TYPE), 1961

1950년대에 재큐어는 특별한 재능을 많이 가지고 있었다. 윌리암 리온(William Lyons, 1901~85)은 모터싸이클 사이드카부터 고성능 자동차까지 회사 전반에 관한 책임을 지고 있었다. 2차 대전 기간 중의 비행기 축의 계약으로 인하여 숙련된 노동력을 보유하게 되었고, 그래서 재규어는 전후에 경량 알루미늄 구조에 아르곤 아크 알루미늄을 적용하게 되었다. 전쟁 기간 중에, 거대한 6 실린더의 3.4 리터 XK 엔진에 대한 기본 설계는 엔지니어인 윌리암 헤네스(Willaim Heynes, 1904~89)이 담당했고, 아마도 공습 중의 화재 경계 근무 중에 하였을 것이다. 이 자동차는 아주 튼튼하고 아름답고 힘 있는 자동차로 개발되었는데, 전후에 벤트리 출신의 엔진 마에스트로인 월터 하산(Walter Hassan)과 튜닝의 천재인 해리 웨스레이크(Harry Weslake)가 개발하였고, 이것은 수십 년 동안 재큐어의 경주용 및 도로용 자동차 프로젝트의 근간이 되었다.

 1948년에 새로운 재큐어 XK120은 런던 모터쇼의 별이 되었는데, 감성적인 D-Type에서 수 많은르망 경주의 스포츠 자동차 경주 부문에서 우승을 차지하였다. D-Type 바디는 람보르기니에서 훈련 받은 공기동역학자인 말콤 세이어(Malcolm Sayer, 1916~70)가 개발하였다. 말콤은 전시에 브리스톨 항공기 회사(Bristol Aeroplane Company)에서 수학적인 기법을 이용한 설계 기법을 익혔다. 비밀의 표에는 항상 비법이 있기 마련이지만, 비록 경쟁자들은 종종 강력한 파워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재큐어는 일반적으로 최고의 속력을 내었다. 세이어는 공기역학의 목표는 높은 속도에서 중량을 극복하는 것과 더불어 자동차 측면 강력한 와류로부터 안정성을 지키는 것이 둘다 중요하다 것을 동시에 깨달았다.

E-Type는 어떤 의미에서 D-Type를 이은 도로의 상속자이고 경주용 자동차 같은 외모의 도로용 자동차였다. 비록 때때로 ‘tart trap’이라고 불렸지만 이것은 D-Type의 우수한 공기역학적인 성능을 물려 받았으며 페라리(Ferrari) 혹은 애스톤 마틴(Aston Martin)의 반값에 150 mph의 성능을 제공하였다. E-Type는 1960년대 영국이 제공하는 아주 훌륭한 외모와 뛰어난 엔지니어링 된 아주 저렴한 슈퍼카였다.

 진정한 저가의 슈퍼카? E-Type는 육감적인 차체와 방탄의 엔진을 가졌다. 이것은 재규어를 특별하게 만들었다.



32. 토요타 프리우스(TOYOTA PRIUS), 1997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2014.08.27 12:07 Posted by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32. 토요타 프리우스(TOYOTA PRIUS), 1997

프리우스(Prius)에서 토요타는 주요 자동차 메이커 중에서 아주 새로운 기술적인 진보를 이루었다. 토요타의 사장인 쇼치로(Shoichiro Toyoda)는 개인적인 확신에 찬 말은 바로 실행하였고, 때때로 이런 비젼은 보편적인 것이 되었는데, Co2 배출과 지구 온난화는 인류가 직면하고 있는 문제가 같은 것이다.

 하이브리드 구동의 프리우스는 기름(가솔리)엔진과 2개의 전기 모터/발전기와 대용량의 배터리 백을 이용하여 전기적인 혹은 엔진의 동력을 이용하거나 혹은 두 가지를 적절하게 분배하여 이용한다. 가솔린 엔진은 전기 시스템을 통하여 도로 위를 달리는데 그래서 가장 효율적인 속도와 동력으로 운행하게 된다. 그 결과 낮은 속도와 가속 페달을 약간 밟아도 연비가 좋다. 게다가 감속시에는 모터가 발전기가 되어 기계적인 에너지를 회복하고 생산된 전기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하게 된다. 이런 과정의 효율에 대하여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프리우스는 연비가 아주 좋지만, 하지만 어떤 소비자와 비평가는 특히 ‘구매에서 폐기’까지 비용을 비교했을 때 구조가 간단하고 효율적인 엔진이 연료소비와 배기에서 복잡한 프리우스 보다 낫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하이브리드 기술은 새롭고 끊임없이 진보하였다.

 그래서 프리우스는 런던과 캘리포니아에서 세금 감면 혹은 정부를 압박하여서 성공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현재의 기술적인 가장 강력한 대안이다.

 하이브리드 가솔린-전기 동력의 발전기 형태의 자동차는 낮은 배출 가스에 가장 효율적인 방법 중의 하나이다. 토요타는 이런 새로운 추세에 대담하고 기술을 선도하였다.



31. 피아트 멀티플라(FIAT MULTIPLA), 1998, 실용적 2×3열의 개구리 자동차

원래의 멀티플라(Multipla)는1956년에 특출한 단테 기아코사(Dante Giacosa ,1905~96)가 새로운 피아트 600을 기반으로 만든 아주 가치는 있는 자동차였다. 뒤쪽 엔진 배치 레이 아웃으로 속임수를 썼지만, 기아코사는 많은 가족을 위한 실용적인 운송 수단으로 3열 시트를 배차하여 완벽하게 새로운 차를 만들었고, 그래서 근 20년 동안 ‘사람들의 탈 것’의 새로운 형태로 기대를 받았다.

새로운 멀티플라는 이런 생각을 완전히 뒤집었다. 1990년대까지는 긴 3열의 ‘밴’ 형태는 아주 일반적이었는데, 그래서 피아트 자동차의 이사인 파올로 칸타렐라(Paolo Cantarella)는 자동차 길이가 4m(13ft) 이하에 편안하게 6명이 탈 수 있는 자동차를 고민하게 되었다.

디자이너인 로베르토 기아리토(Roberto Giolito)와 그의 팀은 1열에 3개 시트 그리고 뒷열에 3개의 시트를 수용하는 독특한 변형을 제안하였다. 2열 레이아웃은 사용자에게 편리한 인테리어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경쟁사의 밴 자동차와는 달리 훨씬 훌륭한 운전 성능을 제공하였다.

불행하게도 ‘개구리 얼굴’을 연상시키는 앞쪽 외관으로 사람들로부터 외면을 받았으면, 1990년 Top Gear에서 ‘가장 못 생긴 자동차’상을 받았지만, 그렀지만 같은 프로그램에서 2000년에 ‘올해의 자동차’상에 선정되었다. 아마도 이 에피소트의 교훈은 르노의 페트릭 레 쿼먼트(Patrick Le Quement)가 새로운 시도를 대중이 이 새로운 형태의 자동차를 기꺼이 받아 들였다. 그러나 멀티플라는 그럼에도 미래 자동차 전형(classic)으로 규정된다.

3+3 시트의 개구리 얼굴을 한 멀티플라는 아주 영리한 디자인 발명이다. 그러나 피아트가 초기의 자동차에서 이런 힌트를 받았다는 걸 대중에게 알리지는 않았다.





30. 로터스 엘리트(LOTUS ELITE), 1957년

자동차 모델/해외 자동차 모델 2014.08.24 00:08 Posted by 자동차 전문 교육 자동차 역사가

30. 로터스 엘리트(LOTUS ELITE), 1957년

콜린 채프먼(Colin Chapman, 1928~82)은 특출하고, 맥력적이적, 개혁적인 엔지니어이자 자동차 경주까지 하는 기업가이다.  그가 로터스 회사에서 경주용 자동차 생산에 이르기까지는 런던의 대학에서 엔지니어링을 공부하고, 또한 혼세이(Hornsey)에서 아버지의 맥주 가게 옆에서 중고 자동차를 팔기도 하였다. 영국 공군에서의 복무 경험은 자연스럽게 경량화 된 구조에 대하여 이해하게 되었다. 채프먼은 자동차 무게를 줄이는 디자인과 더불어 포믈라 원(Formula One)의 규칙을 제정하는데 까지 종횡 무진 활약하였다.

채프먼은 자동차의 성능에 미치는 자동차의 새로운 디자인을 이해한 최초의 사람 중의 하나였다. 자동차의 섀시와 차체는 구조적인 모노코크 형태로 가볍고 단단해야 하고 그렇지만 서스펜션은 도로와 트랙의 맞게 부드럽고 최적화 되어야 한다. 이것은 페라리(Ferrari)와 마세라티(Maserati) 같은 경쟁자들이 이용하는 전통적인 구조와 아주 상충되는 것이다. 그 결과 로터스는 엔진의 성능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종종 민첩한 성능을 발휘하곤 하였다.

 엘리트는 1957년에 출시된,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위한 채프먼의 최초의 로드 자동차이다. 글라서 화이버는 소량 생산에 적합하였고, 엘리트는 피터 커완-테일러(Peter Kirwan-Taylor)가 스케치한 훌륭한 바디의 최초의 글라스 화이버 모노코크이다. 프랭크 코스틴(Frank Costin)은 하비랜드(de Havilland)에서 공기역학을 전공한 공기역학자였다. 또다른 특징은 경주용 자동차와 같이 독립 현가 방식과 모든 4 바퀴에 디스크 브레이크를 적용하였다. 엘리트는 또한 채프먼이 트랙 자동차에 사용한 적이 있는 코벤트리(Coventry Climax) 클라이맥스 엔진을 사용하였다.

동역학적으로 엘리트는 그 당시에 완벽하였다. 낮은 무게 중심으로 코넝링은 형편 없었고, 엔진 사이즈 대비 성능은 아주 뛰어났고, 연비는 나빴다. 그러나 도로용 자동차로서 많은 관리가 필요했다. 그래서 로터스는 이름 그대로 ‘심각한 문제가 많은(Lots Of Trouble Usually Serious)’ 자동차로서 불렸다. 

빠르고 민첩하지만 결함이 많은 로터스 엘리트는 가벼운 무게와 날씬한 차체 덕분에 1200cc Coventry Climax engine을 사용함에도 훌륭한 성능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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